시에나의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과 좁은 골목길마다 숨겨진 역사의 흔적들 그리고 파스타 향 가득한 트라토리아의 정겨움까지 시간이 멈춘 듯한 아름다운 중세도시이며 토스카나의 보석 시에나로의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고귀한 전통이 숨 쉬는 도시 시에나
토스카나 지방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시에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피렌체와 견줄 만큼 번영을 누렸던 시에나는 1348년 흑사병의 창궐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도시의 발전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비극적 역사 덕분에 시에나는 중세의 건축물과 문화유산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었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시에나의 도시 계획은 중세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세 개의 언덕 위에 Y자 형태로 건설된 도시는 17개의 콘트라데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구역은 독특한 동물이나 상징물로 표현됩니다. 붉은 점토로 만든 벽돌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따스한 테라코타 색으로 물들이고 있어 시에나라는 이름이 붉은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시에나의 영광스러운 과거는 도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13세기 시에나 공화국 시절, 이곳은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두치오, 시모네 마르티니와 같은 대가들이 활동했던 시에나 화파는 이탈리아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화풍으로 유명했습니다. 시에나 예술가들은 종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을 놓치지 않았고 이는 후대 르네상스 미술의 발전에도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시에나는 중세 유럽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유럽 최초의 은행 중 하나인 몬테 데이 파스키 은행이 1472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로마와 프랑스를 잇는 비아 프란치게나 순례길의 중요 거점으로서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모직물 산업과 금융업의 발달은 시에나를 중세 유럽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시에나의 건축물들은 도시의 역사적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시에나 대성당은 원래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보다 더 크게 지어질 계획이었으나, 흑사병으로 인해 완공되지 못했습니다. 현재도 남아있는 미완성 성당의 벽체는 당시 시에나의 야망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산입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중세 시대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거리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세 저택들, 작은 광장들과 분수대들은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특히 해질 무렵 석양에 물든 시에나의 붉은 벽돌 건물들은 도시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시에나의 보물들을 찾아 시간여행자의 안내서
1. 캄포 광장
중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캄포 광장은 조개껍데기 모양의 독특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아홉 개의 구역으로 나뉜 붉은 벽돌 바닥은 시에나의 정치체제를 상징하며, 광장 주변을 둘러싼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중세 도시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는 전통 경마 축제인 팔리오가 이곳에서 열립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24시간 개방되어 있습니다. 일몰 무렵 광장에서 즐기는 아페리티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름철에는 관광객들이 광장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주변 카페들의 테라스에서 광장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2. 시에나 대성당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에나 대성당은 검은색과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외관이 특징입니다. 내부의 니콜로 피사노가 제작한 설교단과 피니투리키오의 프레스코화는 반드시 봐야 할 걸작입니다. 성당 박물관과 피치니아나 도서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입니다. 입장료는 복합티켓으로 성인 20유로이며, 3월~10월은 10:30~19:00, 11월~2월은 10:30~17:30까지 운영됩니다. 성당 바닥의 모자이크는 특별 기간에만 공개되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만 플래시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3. 만지아 탑
캄포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인 만지아 탑은 높이 102미터로 중세 시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세속 건물이었습니다.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면 시에나 전체와 토스카나 시골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13유로이며, 하루 입장객이 제한되어 있어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영시간은 여름철 10:00~19:00, 겨울철 10:00~16:00입니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므로 편한 신발이 필수이며, 폐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4. 공공궁전
시에나의 정치 중심지였던 공공궁전은 현재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시에나 화파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암브로지오 로렌제티의 '선정과 악정의 알레고리' 프레스코화는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이며, 운영시간은 10:00~19:00입니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가 가능하며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제공됩니다.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만 일부 전시실에서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5.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유럽 최초의 병원 중 하나로, 현재는 박물관 단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의 의료 시설과 순례자들을 위한 호스피스로 사용되었던 건물 내부에는 놀라운 프레스코화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9유로이며, 운영시간은 10:30~18:30입니다. 지하 미로 같은 통로들과 고대 교회의 유물들을 볼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특별전시회가 열립니다. 건물이 매우 크고 복잡하므로 가이드 투어를 추천합니다.
6. 산 도메니코 성당
13세기에 건립된 이 웅장한 성당은 시에나의 수호성인인 성녀 카테리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녀의 머리가 성물로 보관되어 있으며, 소다마가 그린 성녀의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운영시간은 7:30~19:00입니다. 성당 내부는 고딕 양식의 단순함이 특징이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에나의 심장 팔리오의 전통
시에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700년 이상 이어져 온 팔리오 축제입니다.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 캄포 광장에서 열리는 이 경마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시에나 시민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17개의 콘트라데(구역)는 각각의 상징과 깃발, 노래를 가지고 있으며 시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 콘트라데에 소속됩니다. 팔리오의 역사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는 기사들의 무술 시합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현재의 경마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각 콘트라데는 자신들만의 교회, 박물관, 모임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원들은 평생 자신의 콘트라데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경주는 캄포 광장 주변을 세 바퀴 도는 것으로, 단 90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준비는 일 년 내내 이루어집니다. 각 콘트라데는 자신들의 기수와 말을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경주 전날까지 다양한 의식과 축제가 이어집니다. 특히 말의 축복식은 성당 안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의식으로 시에나 사람들에게 팔리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경주 당일이 되면 도시 전체가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찹니다. 각 콘트라데의 깃발을 든 기수들의 행진, 중세 의상을 입은 시민들의 퍼레이드, 북소리와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시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관광객들은 이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지만 진정한 팔리오의 의미는 시에나 시민들에게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승리한 콘트라데는 일 년 동안 우승 깃발을 보관하며 축하행사를 이어갑니다. 패배한 콘트라데와의 라이벌 관계는 다음 해 경주까지 이어지며 이러한 경쟁과 협력의 관계는 시에나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콘트라데 간의 결혼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었을 만큼 이 소속감은 시에나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팔리오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시에나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시민들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이 전통은 시에나가 얼마나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