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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지

성가정이 발현한 코티냑, 바위 아래 생명의 물, 수호자 가스파르 리카르

by treblue 2025. 4. 6.

흐르는 샘물 소리에 이끌려 베시옹 산자락의 성요셉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1660년 목마른 양치기에게 성인이 나타나 기적의 샘을 열어준 이곳은 고요함 그 자체였어요. "나는 요셉이다, 바위를 들어 올려라" 그 말이 저어게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성당 안에서 우러러본 요셉상의 따스한 눈빛이 내 영혼을 진짜로 어루만지는 감동을 받았답니다. 순례자들이 남긴 감사의 편지들, 버려진 목발들이 이곳의 치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빛바랜 프레스코화 사이로 프로방스의 햇살이 루이 14세가 무릎 꿇었던 그 돌계단 위로 쏟아지는 성가정의 수호자가 지켜주는 이 고요한 성지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프로방스의 보물 성가정이 발현한 코티냑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작은 마을 코티냑은 라벤더 향기 가득한 이 지역에서도 특별한 영적 보물을 간직한 곳입니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그림 같은 마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가정(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그리고 성 요셉) 모두가 발현한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어난 두 번의 발현 1519년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1660년 성요셉의 발현은 이 아름다운 마을을 중요한 순례지로 만들었습니다.

코티냑은 바르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는 베시옹 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드라마틱한 풍경은 수직으로 솟은 절벽과 그 아래 자리한 중세 마을의 조화로 유명합니다. 마을 건물들은 전통적인 프로방스 양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황금빛 돌과 테라코타 지붕 색깔이 햇살 아래 따스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코티냑의 역사는 두 개의 성스러운 장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는 '은총의 성모 성지'로, 1519년 8월 10일 성모님이 나무꾼 장 드 라 봄에게 발현한 곳입니다. 두 번째는 '베시옹의 성 요셉 성지'로, 1660년 6월 7일 양치기 가스파르 리카르에게 성 요셉이 발현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발현은 프랑스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637년 성모 발현지에서의 중보기도 덕분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며 성요셉 발현 이후 루이 14세는 직접 이곳을 순례하고 프랑스를 성요셉께 봉헌했습니다. 이로써 코티냑은 프랑스 왕실과 국가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영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코티냑은 연간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평화로운 성지입니다. 특히 가족들을 위한 순례지로 알려져 있으며 가정의 수호성인인 성요셉을 통해 많은 은총을 체험한 이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성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프로방스의 따스한 기후는 방문객들에게 육체적, 영적 휴식을 제공하며, 마을의 포도원과 올리브 농장은 이 지역 특유의 풍요로움을 보여줍니다.

코티냑 성지 사진

바위 아래 솟아난 생명의 물

1660년 6월 7일, 프로방스의 강렬한 여름 태양이 베시옹 산을 내리쬐던 날 22세의 젊은 양치기 가스파르 리카르는 양 떼를 산기슭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정오가 지나자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물통의 물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갈증에 지친 가스파르는 그늘을 찾아 바위가 많은 땅바닥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의 곁에 나타났습니다. 키가 크고 위엄 있는 노인은 가스파르에게 다가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나는 요셉이다. 바위를 들어올리면 네가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놀란 가스파르는 그 바위가 너무 크고 무거워 보여 여덟 명의 사람이 있어야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 혼자서는 어떻게 그것을 옮길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성 요셉은 단지 지시를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순종의 마음으로 가스파르는 바위에 손을 대었고, 놀랍게도 쉽게 그것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바위 아래에서는 신선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습니다.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물을 마셨고 고개를 들어 그 신비로운 노인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으나 이미 성 요셉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흥분한 가스파르는 서둘러 마을로 달려가 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신뢰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발현 장소로 가봤을 때 놀랍게도 작은 샘물이 세 시간 만에 풍부한 물을 쏟아내는 분수로 변해 있었습니다. 또한 가스파르가 혼자서는 결코 옮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무거운 바위가 정말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이 기적적인 샘물은 곧 치유의 성소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662년 오라토리오회의 알라르 신부는 "성 요셉의 물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제가 돌아온 이후 아비뇽에서 온 한 남자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절름발이였습니다. 그가 샘물을 찾아 치유받고 돌아왔는데 그의 목발을 그곳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고 가져갑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소문이 퍼지자 루이 14세도 이 기적의 장소를 직접 방문했고 그 날을 특별한 기념일로 선포하며 프랑스와 자신을 성요셉께 봉헌했습니다. 1663년에는 발현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고 이 성당은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버려져 폐허가 되었던 이 성지는 1975년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침묵의 수호자 가스파르 리카르

성요셉 발현의 유일한 목격자인 가스파르 리카르는 평범한 양치기였지만, 그의 단순한 믿음과 순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가져다 준 기적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2세의 이 젊은이는 코티냑 근처에서 양치기로 일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웃들 사이에서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가스파르에 대한 자세한 개인적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가 성요셉의 발현을 경험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한 단순하고 직접적인 증언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화려한 수사나 과장 없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했고, 이러한 솔직함이 그의 증언에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발현 이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가 성요셉 성지 발전에 기여했음은 분명합니다.

발현 이후 수백 년 동안, 코티냑의 성요셉 샘물에서는 수많은 치유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가장 잘 기록된 사례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아비뇽에서 온 절름발이 남자의 치유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그는 성요셉의 샘물을 찾아 완전히 치유되어 목발을 그곳에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1662년 알라르 신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다른 놀라운 기적은 1866년 9월 13일 카덴호프에서 일어났습니다. 한 어머니가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들의 두 다리를 리넨 천으로 싸서 코티냑의 성요셉상 발아래 놓았는데, 아들은 그 순간 매우 뜨거운 열기를 느꼈고 3일 후에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나중에 네덜란드의 선교사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성요셉의 발현은 교회의 공식적인 조사를 받았고, 리토메르시 교구의 아우구스틴 파벨 바할라 주교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든 사건을 면밀히 검증했습니다. 자연적인 치유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베시옹 산의 기적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오늘날 성요셉 수도원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여전히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감사의 표시로 남겨진 수많은 편지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순례자들이 남긴 목발, 휠체어, 의료기구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치유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순례자들은 샘물을 마시고, 병든 부위에 바르며, 때로는 집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가스파르 리카르의 단순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시작된 이 기적의 샘물은, 오늘날까지 3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코티냑의 성요셉 발현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침묵 속에서도 강력하게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