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200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사라고사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릅니다. 에브로 강변을 따라 펼쳐진 무데하르 양식의 탑들과 화려한 바로크 성당들, 그리고 현대적인 문화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입니다. 필라르 성모 대성당의 화려한 돔이 도시를 수호하는 이곳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진정한 스페인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2000년의 역사도시 사라고사
스페인 아라곤 자치주의 수도인 사라고사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부, 에브로 강변에 위치한 역사도시입니다. 기원전 24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건설한 이 도시는 당시 카이사라우구스타라 불렸으며 현재의 도시명은 이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어진 이슬람 시대에 사라고사는 독립적인 타이파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습니다. 이 시기에 건설된 알하페리아 궁전은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남아있으며 기독교 재정복 이후에도 무데하르 양식이라는 독특한 건축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중세 시대 사라고사는 아라곤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요 경로 중 하나인 아라곤 루트가 이곳을 지나면서 유럽 각지의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는 도시의 문화적 다양성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의 포위 공격에 맞서 시민들이 영웅적으로 저항한 사라고사 항전은 스페인 독립전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폐허를 딛고 19세기 후반 도시는 다시 번영을 누렸으며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들이 도시 경관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사라고사는 인구 70만의 현대적인 도시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8년 국제 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현대적인 문화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며 여름은 덥고 건조하고 겨울은 춥습니다. 특히 Cierzo라 불리는 차가운 북풍이 특징적이며 관광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과 가을입니다.
사라고사의 찬란한 유산을 찾아서
1. 필라르 성모 대성당
스페인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 성당 중 하나로 에브로 강변의 웅장한 실루엣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가 이곳에 나타나 사도 야고보에게 신앙을 전파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11개의 다채로운 돔과 프란시스코 고야의 프레스코화가 특히 유명하며 성당 내부의 산타 카필라는 스페인 가톨릭의 중요한 순례지입니다. 북쪽 탑에 올라가면 도시 전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성당 입장은 무료이나 탑 전망대는 성인 3유로입니다. 매일 7:00-20:30 운영되며, 미사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알하페리아 궁전
11세기 이슬람 시대에 건설된 요새궁전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이슬람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정교한 스투코 장식과 팔각형 모스크는 당시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현재는 아라곤 의회 건물로 사용되면서도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5유로이며 화요일-토요일 10:00-14:00, 16:30-20:30, 일요일 10:00-14:00에 운영됩니다. 가이드 투어를 추천하며 사전 예약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3. 레오 성당
12세기부터 여러 세기에 걸쳐 건설된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무데하르,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특히 외벽의 무데하르 양식 장식과 16세기의 플란더스 태피스트리 컬렉션이 유명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4유로이며, 화요일-토요일 10:00-18:30, 일요일 10:00-14:00에 운영됩니다. 필라르 성모 대성당과 함께 방문하면 할인된 통합권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4. 로마 유적 루트
고대 카이사라우구스타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 루트에는 로마 시대의 극장과 포럼, 공중목욕탕, 항구 유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로마 극장 박물관은 가상현실을 통해 고대 로마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4개 유적지 통합권은 성인 7유로이며 각 유적지는 화요일-토요일 10:00-14:00, 17:00-20:00, 일요일 10:00-14:00에 운영됩니다.
5. 중앙시장
1903년 완공된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로 화려한 철제 구조물과 아르누보 장식이 특징입니다. 200개가 넘는 상점에서 신선한 식재료와 지역 특산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라곤의 대표적인 식재료인 과일, 채소, 햄, 올리브 오일을 구입하기 좋습니다. 입장은 무료이며 월요일-토요일 7:00-14:00에 운영됩니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일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필라르 축제
매년 10월 12일을 전후로 일주일간 사라고사는 축제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필라르 성모를 기리는 이 축제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스페인의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필라르 축제에서 사라고사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필라르 축제는 서기 40년 성모 마리아가 사도 야고보 앞에 나타났다는 전설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온 이 축제는 종교적 의미와 함께 아라곤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종합 예술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플로레스 아 라 비르헨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필라르 성모상에 꽃을 바치는 행렬입니다. 17미터 높이의 성모상이 수백만 송이의 꽃으로 장식되는 장관은 축제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전통 의상인 'traje de baturro'를 입은 시민들의 행렬도 볼만합니다. 남성들의 검정 바지와 붉은 허리띠와 여성들의 화려한 전통 드레스는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돋웁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귀여운 전통 의상 차림은 관광객들의 카메라를 사로잡습니다.
거리 곳곳에서는 아라곤 전통 음악인 jota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호타는 기타와 반도네온의 반주에 맞춰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예술 형태로 아라곤 사람들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축제 기간 동안 도시 전역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립니다. 거리 공연과 불꽃놀이, 투우, 음식 축제 등이 연이어 진행되며 특히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는 축제의 절정을 이룹니다. 에브로 강변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필라르 성당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음식도 축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통 과자인 플로레스 데 필라르와 아라곤의 대표적인 요리들을 즐길 수 있으며 거리마다 설치된 노점에서는 다양한 지역 특산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축제 기간에는 숙소 예약이 어려우므로 최소 3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며 주요 행사의 시간과 장소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꽃 봉헌 행렬에 참여하고 싶다면 현지 관광청을 통해 사전 등록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