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중심부에 자리한 뤼드박은 1830년 성모님이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나타나 기적의 메달을 제작하도록 지시하신 신비로운 성지입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기적의 메달은 수많은 치유와 개종의 기적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19세기 가톨릭 신앙 부흥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성모님의 무염시태 교리 선포의 밑거름이 된 이 발현은 현대 성모 발현의 출발점으로 오늘날까지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파리의 영적 중심지로 빛나고 있습니다.
파리의 숨겨진 보물 뤼드박 성당과 기적의 메달
2022년 가을 코로나 이후 첫 파리를 방문했을 때 저는 이미 여러 차례의 파리 방문이었기에 제 여행의 진정한 목적지는 조금 덜 알려진 곳 바로 파리 중심부의 뤼드박 거리에 위치한 성모 메달 성당이었습니다. 파리 7구에 위치한 이 작은 성당은 외관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성지입니다. 성당에 들어서자 많은 순례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당 안내원은 이곳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1830년 7월 18일 밤 이곳에서 수련 중이던 24세의 젊은 수녀 카타리나 라부레가 처음으로 성모님을 만났습니다. 카타리나는 늦은 밤 수녀원 복도에서 한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그 아이가 그녀를 성당으로 안내했죠. 거기서 그녀는 성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 발현은 예고에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메시지는 같은 해 11월 27일에 전해졌습니다. 기도 중에 카타리나는 다시 성모님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성모님이 지구본 위에 서 계셨고 두 손에서는 빛줄기가 뻗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성모님 주위에는 타원형의 테두리가 형성되었고 그 안에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카타리나에게 이 모습을 본떠 메달을 만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든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라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성당 내부를 다시 둘러보니 카타리나가 성모님을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 아름다운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성상 아래에는 카타리나 수녀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놀랍게도 부패하지 않고 평화롭게 잠든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1933년 그녀가 사망한 후 발견된 이 기적은 그녀의 진정성을 더욱 확증해 주는 증거였습니다. 성당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박물관에서는 최초의 기적의 메달과 관련 유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메달은 1832년 처음 제작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으며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알폰스 라티스본의 개종입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가톨릭에 적대적이었지만 친구의 권유로 기적의 메달을 착용한 후 1842년 로마의 한 성당에서 성모 발현을 경험하고 즉시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메달의 기적 치유와 개종
성당에서 만난 담당 신부님은 이 메달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카타리나 수녀가 받은 메시지에 따라 제작된 이 메달은 처음에는 성모님의 메달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메달을 착용한 많은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기적적인 은총과 치유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이를 기적의 메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뤼드박 성당은 매일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로 붐빕니다. 그날도 저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한 가족은 막내딸의 심각한 질병이 기적의 메달을 통한 기도 후 완치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노부부는 40년 동안 매일 이 메달을 착용해 왔으며 그들의 가정이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신앙으로 단단히 지켜졌다고 말했습니다.
성당 내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한 여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심한 천식으로 고통받았어요. 어느 날 할머니께서 저에게 기적의 메달을 주셨고 그 후로 천식 발작이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설명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저는 이것이 성모님의 중재로 일어난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성당 뒤편에 마련된 기념품점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기적의 메달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몇 개를 구입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메달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축복받은 성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성당에서는 매시간 구입한 메달에 대한 축복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메달의 앞면에는 빛을 발산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뒷면에는 마리아의 이니셜 M과 함께 예수의 십자가 그리고 12개의 별이 있는 디자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디자인은 카타리나가 본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며 19세기 이후 가장 널리 알려진 성모님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무염시태 교리와 현대 마리아 신심의 시작
뤼드박 성모 발현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현대 가톨릭에서 마리아 신심의 부흥을 이끈 첫 번째 주요 발현이라는 점입니다. 오후에 참석한 성당의 특별 강의에서 한 신학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830년 뤼드박 발현은 19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중요한 성모 발현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후 1846년 라 살레뜨, 1858년 루르드 1917년 파티마 등의 발현이 이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발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뤼드박 발현의 핵심 메시지인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이라는 문구는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아직 공식 교리로 선포되지 않았던 성모 무염시태 개념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는 메달이 널리 퍼진 후 24년이 지난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마침내 공식 교리로 선포되었습니다.
기적의 메달은 단순한 신심 물품을 넘어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적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회의 믿음을 대중화하고 결국 교리로 선포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신학자의 이 말은 뤼드박 발현의 역사적 중요성을 잘 요약해 줍니다. 뤼드박 성당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기적의 메달은 지난 200년간 약 10억 개 이상이 제작되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매년 수백만 개의 메달이 새롭게 제작되고 있으며 파리의 이 작은 성당을 찾는 순례자는 연간 약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성당에서 특별한 촛불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백 개의 촛불이 밝혀진 가운데 다양한 언어로 로사리오 기도가 바쳐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작은 메달이 어떻게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삶에 빛을 가져다주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지막으로 성당을 방문하여 카타리나 수녀의 유해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는 발현 후에도 자신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겸손하게 수도 생활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녀가 발현의 목격자라는 사실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수녀원 원장과 고해신부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파리를 떠나며 저는 뤼드박 성모 발현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는 영적 흐름의 일부임을 깨달았습니다. 기적의 메달을 통해 성모님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계십니다. 에펠탑이나 루브르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뤼드박 성당은 파리에서 꼭 방문해야 할 특별한 영적 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