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펼쳐진 현대의 기적 모든 민족의 어머니 성모발현은 1945년부터 15년간 이다 페르데만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놀라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호소하신 성모님은 새로운 기도문과 독특한 상본을 통해 전 세계에 희망을 전파하셨습니다. 무려 57년 만인 2002년에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이 발현은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기도문이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며 현대 세계의 문제에 대한 영적 해법을 제시합니다. 암스텔담은 자주 가는 관광지이지만 성모발현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인데 우연히 알고 다녀온 후 요즘도 여행 중 들리곤 한답니다.
암스테르담의 영적 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튤립과 운하로 유명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2018년 봄 저는 이 도시의 관광 명소들을 넘어 색다른 순례지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암스테르담 남쪽 외곽에 위치한 모든 민족의 어머니 성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된 놀라운 성모 발현의 중심지입니다.
성지에 도착하자 현대적인 건축 양식의 경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입구에서 만난 수녀님은 이 발현의 역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발현은 1945년 3월 25일 성모영보 대축일에 시작되었어요. 당시 40세였던 이다 페르데만이 집에서 기도하던 중 갑자기 밝은 빛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성모님을 보게 된 것이죠.
이다 페르데만은 1905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평범한 사무직 종사자였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인 12세 때 처음으로 발현을 경험했지만 본격적인 메시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전쟁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이 암스테르담에 찾아온 것과 같았습니다.
성지 내부로 들어서자 독특한 성모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성모상은 이다가 본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것으로 다른 성모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양 손을 뻗어 모든 민족을 품는 자세였고 발은 지구본 위에 서 계셨으며 그 뒤로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성모님이 임신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배우자로서의 성모님을 강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다는 1959년 5월 31일까지 총 56번의 발현을 경험했어요. 각 발현마다 세계 정세와 교회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예언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죠. 안내를 맡은 수녀님의 설명을 들으며 저는 이 발현이 단순한 영적 체험을 넘어 20세기 후반의 역사적 사건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발현이 끝난 후에도 이다는 1984년부터 성체적 체험이라 불리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2009년 10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상본과 기도문의 탄생 모든 민족을 위한 어머니
성지의 중앙 예배당에서는 하루에 여러 번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들 모두가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성모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름은 성모님 자신이 이다에게 나는 이제부터 모든 민족의 어머니라고 불리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발현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상본과 기도문의 탄생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이다에게 특별한 상본을 그리도록 지시하셨고 이 상본은 이후 전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성지의 한쪽 벽면에는 이 상본이 50개가 넘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기도문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세상의 아들이시여,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성령을 세상에 내려주소서. 성령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 거하시어, 그들을 타락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하소서. 모든 민족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녀께서 우리의 변호자가 되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아멘.
이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기도문은 현대 세계의 문제에 대한 영적 해결책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 인종, 종교를 초월한 인류의 일치를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성지의 기록 보관실에서는 이다가 받은 메시지들을 원본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메시지들은 종종 구체적인 세계 정세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초반에 이다는 베를린 장벽의 건설과 붕괴, 바티칸 제2차 공의회, 냉전의 전개 등을 암시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성모님이 마리아 공동구속자, 중재자, 변호자라는 새로운 교리의 선포를 요청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톨릭 신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로 교황청이 이 발현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57년 만의 인정 발현의 의미
암스테르담 발현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발현이 시작된 지 무려 57년이 지난 2002년 5월 31일에야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지의 역사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의심이 있었어요. 이다가 받은 메시지들이 당시 교회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여겨졌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예언적 메시지들이 하나씩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며, 교회는 점차 이 발현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하를렘 암스테르담의 주교 요제프 마리아 풍트는 모든 민족의 어머니 칭호의 공적인 신심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성지 방문객 중에는 실제로 기도를 통해 치유를 경험했다는 간증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한 여성은 불치병으로 진단받았다가 이 성지에서 기도한 후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다른 순례자는 가족 갈등의 해결을 경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오후에는 성지에서 개최된 특별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한 신학자는 암스테르담 발현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발현은 단순히 개인의 영적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집단적 도전에 대응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모든 민족을 강조하는 이 발현은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하는 오늘날의 세계에 중요한 영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성지를 떠나기 전 저는 기념품 가게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기도문 카드를 구입했습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 심지어 한국어 버전도 있었습니다. 이 작은 카드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평화와 일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을 떠나며 저는 모든 민족의 어머니 발현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영적 움직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튤립과 운하로 유명한 이 도시에 세계 평화와 일치를 위한 영적 등대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전 두번이나 방문을 더 했습니다. 암스텔담 여행 계획 있는 분들 꼭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