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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지

빌마리의 탄생, 성녀 마르그리트 부르주아, 세계의 여왕 마리아 대성당

by treblue 2025. 4. 18.

여명의 빛이 세인트 로렌스 강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노트르담드봉스쿠르 성당의 돔을 비추는 순간 몬트리올의 오랜 별명 빌마리의 의미가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380년 전 프랑스 개척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이 도시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마리안 영성을 간직하고 있었고 세인트 폴 거리를 따라 걸으며 올드 몬트리올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17세기 수녀 마르그리트 부르주아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녀가 지은 선원들의 성당'에 들어서니 천장에 매 달린 작은 배 모형들이 세월의 흐름을 초월한 신앙의 증거로 저를 맞이하며, 성당 뒤편에서 만난 미크맥 원주민 노인은 이곳은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며 성모님이 다양한 민족의 화합을 위해 이 땅을 선택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몬트리올의 상징인 마운트 로열 언덕 위 성 요셉 성당의 거대한 돔 아래서 개척 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마리아 도시의 유산이 내 영혼에 깊은 울림을 간직한 채 성지순례를 마쳤습니다.

몬트리올 성모 수호 성당 사진

마리아에게 바쳐진 도시 빌마리의 탄생

몬트리올은 북미에서 드물게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져 설립된 도시입니다. 1642년 5월 17일 폴 드 쇼메디 드 메종뇌브와 잔 망스가 이끄는 약 40명의 프랑스 정착민들이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도착하여 빌마리라는 이름의 정착지를 세웠습니다.이 정착지 건설은 단순한 식민지 확장이 아닌 종교적 사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협회라는 단체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성모 마리아의 보호 아래 원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몬트리올의 초기 역사는 종교적 열정과 개척 정신이 결합된 독특한 사례입니다. 당시 이 지역은 이로쿼이 원주민들의 영토였으며  프랑스 정착민들은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메종뇌브와 그의 동료들은 이 모든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몬트리올이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히 헌정된 도시라는 사실은 초기 정착민들의 일기와 기록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메종뇌브는 1643년 성 로렌스 강의 홍수로부터 정착지가 보호받자 감사의 표시로 마운트 로얄 정상에 십자가를 세우고 성모 마리아께 헌정했습니다. 이 십자가는 오늘날까지도 몬트리올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협회의 회원이었던 제롬 르 로이에 드 라 도베르시에르는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고 몬트리올 설립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이 환시에서 마리아가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몬트리올의 초기 공동체는 성모 마리아의 덕목을 모방하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병자를 치유하며, 원주민들을 교육하는 사명을 중요시했습니다. 잔 망스가 설립한 오텔 디외 병원은 이러한 정신을 구체화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1663년 빌마리는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실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들어갔지만, 도시의 마리안 정체성은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헌신은 몬트리올의 문화적, 종교적 풍경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몬트리올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생각했으며 성모 마리아가 특별히 보호하는 땅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교회, 성당, 수도원의 건립으로 이어졌으며 몬트리올이 북미에서 성당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성녀 마르그리트 부르주아

몬트리올의 마리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성녀 마르그리트 부르주아입니다. 그녀는 1653년 빌마리에 도착한 프랑스 출신의 수녀로 캐나다 최초의 여성 성인이자 북미 최초의 비수도원형 여성 수도회인 노트르담 수녀회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마르그리트 부르주아의 몬트리올 여정은 신비로운 성모 마리아 환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40년 프랑스 트루아에서 로사리오 행렬 중 노트르담 성당의 성모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몇 년 후 그녀는 메종뇌브의 초청으로 새로운 정착지인 빌마리에서 교사로 일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게 됩니다. 1655년 마르그리트는 몬트리올에서 최초의 학교를 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 이게도 그녀는 모든 배경의 아이들 특히 원주민 소녀들도 교육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포용적 영성을 실천하는 것이었으며 당시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는 선구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마르그리트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 중 하나는 노트르담드봉스쿠르 성당입니다. 1655년에 그녀가 건립을 시작한 이 성당은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입니다. 선원들의 성당으로도 알려진 이 성당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오가는 선원들이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구하는 장소였습니다. 성당의 옥상에는 강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 동상이 있어 오랫동안 선원들에게 안전한 항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성당 내부의 아치에 매달린 작은 배 모형들은 바다에서 무사히 돌아온 선원들이 감사의 표시로 남긴 것입니다. 이 성당은 보호의 성모라는 이름처럼,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을 지키는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1754년 화재로 파괴된 후 1771년에 재건된 이 성당은 오늘날 마르그리트 부르주아 박물관과 함께 몬트리올의 중요한 역사적, 영적 명소입니다. 성당 지하에는 1700년에 사망한 마르그리트 부르주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르그리트 부르주아는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그녀의 영성은 몬트리올의 마리안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녀가 강조한 순례하는 성모의 이미지는 새로운 땅에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몬트리올의 정신과 깊게 연결되었습니다.

노트르담드봉스쿠르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물을 넘어 몬트리올의 다문화적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며, 19세기 초에는 몬트리올 영어권 가톨릭 공동체의 영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서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포용적 보호를 상징했습니다.

현대 몬트리올의 마리안 성지들과 영적 유산

현대 몬트리올에서도 도시의 마리안 정체성은 여러 상징적인 장소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는 세계의 여왕 마리아 대성당입니다. 1894년에 완공된 이 대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축소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몬트리올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내부의 그림들은 빌마리 초기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어도 시의 마리안 기원을 기억하게 합니다. 몬트리올의 또 다른 중요한 종교적 랜드마크는 마운트 로얄 언덕 위에 위치한 성 요셉 성당입니다. 비록 성모 마리아가 아닌 성 요셉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성당 역시 몬트리올의 깊은 가톨릭 유산을 보여줍니다. 성 안드레 베셋에 의해 1904년에 설립된 이 성당은 북미에서 가장 큰 돔을 가진 교회로,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합니다.

몬트리올의 마리안 영성은 도시의 명칭과 지리적 특징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산인 마운트 로열은 라틴어로 'Mons Regiu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왕의 산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늘의 여왕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며, 메종뇌브가 이곳에 세운 십자가는 오늘날까지 도시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몬트리올 시내 곳곳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거리 이름, 광장, 기관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트르담 거리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이며, 아브 마리아 광장과 같은 장소들은 도시의 마리안 유산을 일상 속에서 상기시킵니다.

도시의 마리안 영성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를 통해 살아있습니다. 매년 5월 마리아의 달과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는 특별한 행사들이 열리며, 노트르담드봉스쿠르 성당에서는 전통적인 선원들의 축복식이 여전히 거행됩니다. 몬트리올의 독특한 점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모 마리아 신심을 표현하며 도시의 마리안 정체성에 기여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성모 축일 행렬,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의 과달루페 성모 축제, 포르투갈 이민자들의 파티마 성모 기념 등은 몬트리올의 다문화적 마리안 영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현대 몬트리올에서 마리안 영성은 사회 정의와 생태적 관심과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와 종교 단체들이 성모 마리아의 돌봄과 보호의 정신을 빈곤, 노숙, 이민자 지원과 같은 현대적 사회 문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조물의 수호자로서의 마리아 이미지는 환경 보호 활동에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몬트리올의 마리안 유산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오늘날에도 도시의 정체성과 영성적 방향을 형성하는 살아있는 전통입니다. 빌마리로 시작된 이 도시는 38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마리아의 도시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